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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인시 모현면 능원리 산 5번지 소재


이석형은 태종 15년 (1415)에 출생 조선초기의 문신으로 자는 백옥(白玉). 호는 저헌, 본관은 연안이다. 세종 23년 (1441)에 진사. 생원에 장원하였고 응교 때 중시(重詩)에 급제하여 모두 3장원을 하였다. 문종 1년 (1451) 집현전직제학(集賢殿直提學) 춘추관 기주관을 겸하고 정인지(鄭燐趾) 등과 고려사(高麗史) 편찬에 참여 하였다. 그후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를 거쳐 예종 1년 (1469)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에 올랐으며 성종 1년 (1470)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가 되고 이듬해 좌리공신(左理功臣) 4등으로 연성부원군(延城府院君)에 피봉되었다. 문장, 글씨에 능했으며 성종 8년 (1477) 2월 8일에 하세. 향수는 63세이다.

묘소의 초입에 들어서면 탁 트인 평지를 지나서 마주 보이는 왼편으로 보이는 것이 정몽주 선생의 묘소이고 비슷한 높이의 오른쪽 언덕에 이석형 선생 묘소가 있다.

이석형 선생의 묘소 아래에는 조선 인조2년에 세워진 신도비가 있다. 이 신도비의 전액(篆額)은 연성부원군 저헌 문간공 이선생 신도비명(延城府院君樗軒文簡公李先生神道碑銘)이라 되어있다. 개석이 없는 비갈형(碑碣形)이며 비대석은 상단에 복련을 두고 각 우(隅)와 전후 중앙에 동자주를 두었으나 비양(碑陽) 비음(碑陰)에 마멸 상태가 심하다.

비문은 조선 인조 때의 문신 김상용(金尙容)이 전액(篆額)하고 글은 선생의 5대손이며 우의정을 지낸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가 짓고 글씨는 선조의 딸 정숙옹주의 남편이며, 병자호란 때에는 척화를 주장했던 동양위(東陽尉) 신익성(申翊聖)이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