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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문화재 제9호
  용인시 모현면 능원리 118-1 소재


충렬서원은 고려말 충신이며 성리학자인 포은 정몽주 선생의 신위(神位)를 주향(主享)으로 하고 병자호란 때 강화에서 순절(殉節)한 죽창 이시직(李時稷)과 포은 선생의 후손인 설곡 정보(鄭保)의 신위를 배향(配享)한 서원으로 만력 병자년 조선 선조 9(1576)년에 초창되었고 광해조 기유년(1609)에 사액되었다.

본래는 충열사(忠烈祠)라 하였으며 지금의 수지면 죽전리에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포은 문집을 보면 『용인현의 북쪽 모현촌(慕賢村) 죽전동(竹田洞)에 있는데 만력 병자년(1576)에 사인 이계(李啓), 이지(李贄) 등이 창건하여 선생을 향사(享祀)하고 정암 조광조(趙光祖) 선생의 신위를 배향하였다. 이곳에 서원을 둔 것은 대개 이곳이 두 선생의 묘도(墓道) 사이에 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때 불탓는데 을사년(선조 38, 1605)에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가 기백(圻伯)이 되어 선생의 후손인 종선(縱善)과 충전(忠傳), 그리고 사인 이시윤(李時尹) 등과 함께 의론하여 선생의 묘하에 중건하였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 후 영부사(領府事) 이경석(李景奭), 좌의정(左議政) 홍명하(洪命夏), 용인현령 이신하(李紳夏) 및 참판 조복양(趙復陽) 등 충렬서원 중건 추진위원이 구성되어 전국 수령방백들로 부터 보내온 성품, 물종을 받아 강당과 사우를 중건하였는데 이 역사(役事)는 을사년(1665)부터 시작되었고 병오년(1666) 정월 초 8일 시역(始役)하여 정미년(1667) 6월에 모든 공정이 완료되었음이 충렬서원 중수록에 나타나고 있다.

그러니까 이계, 이지 등이 1576년 (병자년) 모현촌 죽전동에 세웠던 최초의 서원 충렬사는 임진왜란 때 불탔으므로 선조 38년인 1605년에 다시 지금의 모현면 능원리에 기백 이정구와 후손 종선 충전이 함께 사우를 건립한 바 있으며 이경석, 홍명하 등은 다시 사당과 강당을 중건한 것이 된다.

그후 숙종 병술년(1706)에 후손 재두(齋斗)와 찬조(纘祖) 및 사인 심정희(沈鼎熙), 이수담(李壽聃), 강석항(姜錫恒) 등이 옛 터 가까이의 조금 서쪽에 옮겨 세웠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지금의 서원은 네 번째 중건 또는 이축된 건물임을 짐작케 한다. 또 대원군이 집정했을 때 일시 훼철(毁撤) 되었던 것을 순종 때인 1911년 유림의 탄원으로 복원이 허락되어 맹보순(孟輔淳), 김학조(金學祖), 정택기(鄭宅基) 등이 복원하였으며 1956년 조병교(趙炳校), 당시 군수 이승렬(李承烈) 등이 중수(重修)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근년에 들어 1972년 경기도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사당을 전면 보수하였고 강당과 내삼문을 해체 복원하였으며 삼문 앞에 계단을 신설하였다. 또한 원내에 있던 고직사(庫直舍) 1동을 이전하였고 1975년 홍살문과 외삼문을 신설하였으며 1977년 서원 담장을 신축하였다. 그후 1979년 1980년에 들어와서도 사당과 사묘를 수리 보수하는 등 누차 행정력이 투입되었다. 1994년 추계 향사 때에는 부주의로 인한 화재가 발생하여 정전 우측 분합문과 문설주, 창방과 기둥, 마루 등이 일부 탓거나 끄슬리기도 하였는데 다행이 큰 피해는 없었다.

건축물 현황을 살펴보면 정전(正殿:사당)은 정면 3칸, 측면 3칸이며 건축 면적은 44.38㎡(13.45평)이다. 기단은 장대석 바른 층 쌓기를 한 다음 정평 주초를 두고 그 상부에 원통형의 목주(木柱)를 세웠다. 지붕은 한식 골기와를 얹은 겹치마 맛배지붕으로 좌우에 풍판(風板)이 있으며 수설(垂舌)을 지닌 2익공집이다. 바닥에는 방전을 깔았으며 연등천정으로 되어있다. 전면퇴간(前面退間)은 7량가(七樑架)이고 후면 중앙벽에 영정을 봉안하는 감실이 있다. 강당(講堂)은 측면 2칸, 정면 3칸으로 면적은 37.05㎡(11.2평)이다. 장대석 바른층 쌓기를 한 기단 위에 정평주초를 두고 그 상부에 방주(方柱)를 세운 팔작지붕의 민도리 집이다.

건축물의 양식적인 특징을 살펴보면 경사지에서 전면에는 강당의 영역, 후면의 높은 곳은 사당의 영역으로 배치되어 있다. 사당과 강당의 건물축(建物軸)이 갖는 연관성이 없으며 강당은 주 진입축에서 벗어난다. 평면적으로는 사당은 전면퇴관(前面退間)을 갖이 정방형에 가까운 건물비례를 가지고 있다. 강당은 주택의 사랑채 평면형식과 유사하여 특히 누마루의 형식이 측이한 점이다. 입면 구조면에서 볼 때는 사당은 전면퇴간(前面退間) 7량가(七樑架)로 내부에는 판대공이 있다. 사당을 해체 복원 했을 때 익공, 주두, 보아지 등의 원형이 변형되거나 손상된 것 같다는 전문가의 견해가 있어 고건축물의 보수 또는 개축시에는 정확한 고증과 현상보존에 신중을 기해야 할것 같다.

- 용인문화원 발행 /이인영(李仁寧)著 /<내고장 용인 문화유산총람> 에서 발췌-